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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의 사건파일

⚫️성수대교 붕괴사건 사고원인 사망자 희생자

by 와우의 레이스 202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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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와우의 레이스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사건 파일은

일상에서 갑작스런 대형사고로

많은 인명을 앗아간 성수대교 붕괴사건입니다 

 

 

 

 

 

 

 

 

※ 사건 개요

 

사건의 일어난 시기는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아침 7시 38분이었다.

성수대교 10번과 11번 교각을 잇는 상판 48m가 붕괴하면서 한강으로 떨어졌는데.

그 시각, 낙하한 다리 상판 위를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다리 상판과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습니다.

 

다리 상판이 떨어지는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2대는 물속으로 떨어졌고.

다리 위를 달리던 한성운수 소속 16번 시내버스가 추락하면서

인명 피해는 더욱 커졌습니다.

 

 

다리 상판이 떨어져 나간 지점에 걸쳐 있던 16번 버스는

차체가 뒤집히면서 상판 위로 추락했다.

뒤집힌 채 떨어진 차체는 심하게 찌그러졌고,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버스 추락으로 사망한 사람은 24명이었다.

 

이중 8명이 무학여고 학생이었고, 1명은 무학여중 학생이었는데.

이날 사고로 총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자

당시 이영덕 국무총리는 사표를 냈고,

이원종 서울시장은 경질됐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인 10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은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했습니다.

 

 

 

 

 

※ 성수대교는 왜 붕괴되었나?

 

애초에 길이 1161m, 너비 35m의 8차선으로 건설된 성수대교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다리였고.

한강의 11번째 다리로 건설된 성수대교는

1977년 4월 착공해 1979년 10월 16일 준공됐습니다.

 

1970년대 영동 신도시 개발에 따른 서울 동부권의 균형 발전과

강남을 부도심권으로 육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다리였고

성수대교는 강을 가로지르는 교량의 기능에 더해 외관에도

신경을 쓴 첫 번째 다리였다.

 

성수대교 이전에 세워진 교량들은 공법이나

구조상의 특징보다는 기능과 건설비용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반면 성수대교는 외관의 조형미를 고려했다.

콘크리트 교각 위에 건설용 강철인 강재로 구성된 상부 트러스를 얹어 만들었습니다.

 

트러스는 직선으로 된 여러 재료를 삼각형 혹은

오각형으로 짜서 지붕이나 교량의 기둥 위에 얹는 구조물이다.

이전에 건설된 교량에 비해 교각과 교각 사이가 넓었고,

다리 남단과 북단을 연결하는 진출입로가 입체적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더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위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파란색으로 도색했다.

 

 
 

하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트러스 구조물을 완벽하게 시공할 수 없었다.

시공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상부 트러스 철골 구조물은 허술하게 설치됐고,

차량의 하중을 분산시키는 이음새 연결 또한 부실했다.

결과적으로 외관에 신경을 쓴 성수대교의 트러스 공법이 사고를 일으킨 주된 원인이었다.

군사작전을 펼치듯 완공기한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강행한 공사도 사고를 부추긴 원인이었다.

게다가 미래의 교통수요를 적절히 예상하지도 못했다.

통행 허용 한도인 32.4톤을 초과하는 과적차량이 오가면서 하중이 더해졌다.

다리 안전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아예 작동조차 되지 않았다.

그 결과 피로 균열이 발생해 다리 상판이 붕괴되는, 실로 믿기지 않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 발생 직후 관계 전문가들은 성수대교를 보수해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시민들의 충격과 불안감 해소를 위해

정부는 기존 성수대교를 철거하고

새로운 다리를 건설키로 했다.

이 결정에 따라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한

재건 공사는 1995년 4월 26일

착공해 1997년 7월 3일 완공됐다.

다리를 다시 짓는 데 들어간 공사비는

780억 원으로 처음 건설했을 때의

공사비(116억 원)보다 약 6.7배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새롭게 건설된 성수대교는 외관뿐 아니라

안전에도 만전을 기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안하지 못해

1998년 12월 확장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확장공사는 차도를 늘리고,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로 연결되는

진입로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애초 예정된 성수대교 확장 준공일은 2002년이었으나

2년이 늦어진 2004년 9월 공사가 끝났다.

공사에 투입된 비용은 1300억 원으로

두 차례의 건설비를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삼풍백화점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함께 대한민국 3대 붕괴 사고로 불리며,

당시 이미 연이은 사건사고로 오명을 쓰고 있던

김영삼 정권 시대의 굵직한 기록으로 남겨진 참사로 남게 되었다
또한 32명이라는 사망자 수만으로 본다면,

광복 이후의 인명참사 규모로 큰 축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성수대교는 붕괴 20년 기념해 다리가 끊어져도 한강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이중 안전장치인 낙교 방지 턱과 육안 확인이 어려운 교량 손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온라인 감지 시스템 등을 소개되고 있다

 

서울시는 성수대교 붕괴 20년 이후 교량 안전관리와 관련해

성수대교 낙교방지턱 설치, 온라인 안전감시 시스템 설치,

1인 1 시설물 전담주치의 제도 신설, 정기 점검, 정밀점검,

정밀안전진단 의무 실시 교량에 대한 내진 보강,

수중 점검선 자체개발 및 운영이 바뀌는 등,

크게 6가지가 달라졌고 밝히고 있는 중이다

 

 

 

 

                                                                    이상으로 사건파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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