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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의 사건파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실종 납치 암살사건의 진실 회고록 양계장분쇄기-총살 암살주장 천보산 살해범들 박정희 김재규 영화 남산의 부장들 오작교

by 와우의 레이스 2023.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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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2’ 12회에서는 ‘김형욱 실종사건’, 음모와 배신으로 얼룩진 ‘그날’의 이야기를 파헤쳐본다.

1979년 10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기묘한 실종사건이 발생했다.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한 호텔을 예약했던 한국인 남자가, 방안에 짐을 그대로 둔 채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프랑스 경찰은 물론 파리주재 한국 특파원들도 예사롭지 않은 실종사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라진 남자의 정체가 바로, 대한민국 최장수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5일 전 저녁, 파리의 유명 카지노에서였다. 하지만 그 이후 김형욱의 실종과 관련된 어떠한 실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기자에게 의문의 편지 하나가 도착했다. 발신자가 표시되지 않은 그 편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오작교 작전의 첫 번째 대상은 김형욱이다!”

김형욱의 실종은 단순 사고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과연 김형욱은 어디로 어떻게 사라져 버린 것인지 그리고 ‘오작교 작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무엇 하나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채 수많은 추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끝내 김형욱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내가 김형욱을 죽였다.”, 암호명 ‘천보산’의 등장

지난 2005년 4월, 자신이 직접 김형욱을 납치, 살해했다는 남자가 나타났다. 암호명 ‘천보산’으로 불렸다는 그의 정체는 중앙정보부 소속 특수공작원이었다. 국내에 큰 파장을 몰고 온 천보산의 증언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그는 왜 사건 발생 26년 만에 입을 열게 된 것인지 지금까지도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과 관련해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그의 회고록이다. 당시 권력 서열 2위였던 김형욱이 중정부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 썼다는 회고록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또 그의 실종과 어떤 연관이 있지 이야기 한다.

 
 
 

김형욱은 1948년 육군사관학교 8기생으로 1961년 5.16군사정변 당시에는 중령으로 쿠데타에 참가하였으며 36세의 나이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최고위원이 된다. 

김재춘의 뒤를 이어 제4대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했고 대한민국 육군 준장으로 진급과 동시에 예편하였다. 박정희의 장기 집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 공작을 벌였지만 후에 버림받고 미국으로 망명하는 신세가 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소개되었지만  미 의회 청문회에 나가서 박정희에 불리한 증언을 하는 등 반정부 활동에 앞장서기도 했고 대한민국의 부정부패 박정희의 비자금 독재 등을 내용 회고록을 내기도 하였다

김형욱의 실종 납치 암살사건은 실종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현재까지 아무것도 확증된 바 없다. 납치되어 곧바로 살해당했다 총살 그리고 분쇄기 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였냐를 놓고는 주장이 분분하다.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미스테리중 하나로 방송에서도 여러번 다루어졌다.

첫번째 설 국정원조사

당시 이상열 주 프랑스 공사는 중앙정보부 프랑스 거점장을 겸하고 있었다.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현지에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던 A요원, B요원이 담당했다. 이들은 동유럽 출신 협력자 2명을 10만 달러에 고용했다. 김형욱 전 부장은 이상열 공사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 공사는 전주를 소개시켜주겠다며 10월 7일 샹젤리제 거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A요원과 협력자 2명이 나타나 이 공사의 승용차를 이용해 김형욱을 납치해서 파리 근교로 끌고 갔다. 협력자가 소련제 소음권총 7발을 발사해 살해했다. 살해한 시신은 낙엽으로 덮어두었다. 이상열 공사는 A요원에게 관저에서 결과를 보고받았다. 그는 김형욱 부장의 여권과 지갑은 자신이 갖고, 나머지 소지품을 철저히 인멸한 뒤 귀국할 것을 지시했다. A요원은 귀국 후 10월 13일 김재규 부장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김재규는 직접 A요원을 불러 거액의 돈 봉투를 쥐어주며, 앞으로의 근무나 생활의 편의를 봐주겠다고 약속했다

두번째 양계장 분쇄기

2005년 전 중앙정보부 요원 이 모씨가 자신이 김형욱을 죽였다고 주장하였다(자신의 신분을 입증하기위해 사제폭탄제조를 하기도 했다) 자신이 중정 공작원출신이며 납치 당일 김형욱을 마취시킨 뒤 반쯤 의식불명이 된 김형욱을 파리 근교까지 찾아가서 산 채로 머리부터 양계장 대형 믹서 일명 분쇄기에 넣어 갈아 죽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타방송에서는 나왔지만 그 분쇄기에 사람을 넣을 사이즈가 되지 않는다고 나왔고 그만한 분쇄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후 한 방송에서는 중형 분쇄기는 보급 되지 않았다고 하였고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프랑스에 중형 닭모이 기계가 보급이 되고 있다하였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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