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레전드)가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
'꼬꼬무'에서는 정의를 실현하는 검사를 꿈꿨지만 사법시험 준비생에서 희대의 살인마가 된 박흥숙 이야기를 소개했다
1977년 4월 20일 광주 무등산 덕산골, 23살의 청년 박흥숙은 망치를 휘둘러 장정 넷을 살해하는 참극을 벌였다. 사건 직후 언론을 통해 속속 밝혀진 무시무시한 살인범의 정체는 광주 무등산 중턱 무당촌을 근거지로 삼아 수련 중인 뒤틀린 영웅심의 소유자라는 것이었다. '무등산 타잔', '무등산 이소룡'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괴력의 살인마의 정체는 박흥숙이었다.
그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중학교도 수석으로 입학해 검사가 되길 꿈꾸던 사법고시 준비생이었다. '꼬꼬무'는 여동생의 인터뷰를 통해 오빠인 박흥숙에 대한 기억과 그날의 진실을 아야기한다.
박흥숙은 중학교에 입학해야 할 나이에 광주시내에서 열쇠수리공으로 일을 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인지, 주경야독을 하여 다섯달 후 검정고시에 합격했다고 그의 여동생과 그의 일기는 증언한다. 검정고시로써 고등학교 과정을 통과한 그는 곧바로 사법고시를 준비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계획은 우리로 하여금 그가 법관이 되면 가난을 벗어나 흩어진 가족들을 모아서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이때 그가 자신의 거처로 삼은 것이 무등산이다. 그는 무등산 산자락으로 들어가서 움막집을 세우고 흩어졌던 가족들을 이곳으로 불러모았다. 당시 무등산 자락 주변에는 스무여 가구가 빈민촌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주민들이 박흥숙과 그의 가족이 굶주림에 허덕이면 자신들의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1977년 광주시 동구청 소속의 건설반장인 오종환 반장과 철거반원 일곱 명이 무등산을 올랐다. 그들의 목적은 등산이 아닌 바로 이 일대의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기 위한 산행이었는데, 마침 그즈음에 무등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구청에서 판자촌 주민들에게 앞서 알려 나머지 집들을 철거된 상태였지만, 갈 곳 없는 여덟 가구의 집들만 남은 상황이었다 살인사건의 시작은 철거 반원들이 집에 불을 지르면서 시작되었다.
박흥숙은 철거반장 오종환을 향하여 자신이 만든 사제 공기총으로 위협사격을 가했다. 그가 사제 총을 만들 수 있던 연유는 바로 그가 열쇠공을 시작으로 금속을 다루는 일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총을 든 그는 철거반장에게 부하 반원들을 모두 모으라고 위협을 가하여 철거반원 7명 중 5명이 불려왔고, 박흥숙은 여동생에게 지시하여 철거반원들을 묶게 하였다. 당시 그가 이들을 결박한 이유는 이 사람들을 결박하여 도망가지 않게 한 뒤 그는 스스로 시내로 가서 당시의 광주시장에게 따지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박흥숙은 포박한 철거반원들을 자신의 공부방으로 파 놓았던 구덩이에 넣은 다음, "불태운 우리 집에 사과해라"라고 호통을 쳤는데, 이 와중에 철거반원들은 마침 헐겁게 묶여 있던 포박을 풀고 반항하였고, 박흥숙은 망치로 그들을 공격해서 5명 중 4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당시에는 철거 용역깡패들을 동원해 빈민촌 철거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시기다
살인을 저지른 박흥숙은 놀라서 도주하였고, 박흥숙의 여동생은 시내로 내려가서 광주 시청으로 가서 시장을 만나려 했으나 시장은 만나 주지 않았다. 그녀는 시청 직원에게 사건의 전말을 전한 뒤 없어진 집터로 갔다. 이로 인해 어머니는 공무집행방해죄, 여동생은 살인방조 혐의로 체포되어 무등산에서 하산했다. 박흥숙은 광주 시내로 내려와 예금해 두었던 돈을 찾고 머리를 깎고 양동시장에서 하늘색 재킷을 산 뒤 시외버스를 타고 여수로 향했다. 그는 여수에서 1박을 한 다음 여수역에서 서울로 향했으며 서울역 앞의 여인숙에서 다시 1박 후 상계동의 이모 집에서 숨어있다가 시민의 제보로 붙잡다고 전해지지만 경찰의 거짓 조작 발표이며 박흥숙이 자수 후 진술한 그의 도주 행각은 이렇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흥숙은 최후 진술서를 통해 "저의 지난날을 뼈져리게 뉘우치고 저의 울분 때문에 아깝게 희생되버린 그분들의 영령을 위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의 죄는 죽어 마땅하리다. 미친 정신병자의 개소리라 해도 좋고 빗나간 영웅심의 궤변이라 해도 좋다"라며 "하오나 다음에는 이 같은 불상사가 되풀이되지 않는다면 죽어가는 몸으로서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라고 썼다.
그러면서 "방 한 칸 의지할 데가 없어서 남의 집 변소를 들여다보지 않고 남의 집 처마 밑을 들여다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지금 말씀드리는 나의 고충 조금이라도 이해하시기 어려우시리라"라고 했다. 박흥숙은 "나는 돼지 움막보다도 못한 보잘 것 없는 집이지만 짓지 않으면 안 되었다"라며 "세상에 돈 많고 부유한 사람만이 이 나라 국민이고 죄 없이 가난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는 "허물어진 담장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그들을 타오르는 불길 속에 발을 동동 구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타까이 허둥대는 그들을 보라"며 "불쌍하지도 가엾지도 않단 말인가?"라고 적었다. 끝으로 박흥숙은 "움막에 있던 무등산에 묻히고 싶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박흥숙의 마지막 유언은 허가받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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