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꼬꼬무
지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지난 1988년 10월 대한민국을 흔든 지강헌 사건과 뒷이야기를 조명했다.
지강헌은 공부를 할 기회가 없는 그에게 배운 것이라곤 주먹질과 도둑질 결국 상습 절도로 체포돼 총 17년의 징역선고를 받게된다. 당시 그는 이미 이전 전과가 잡 전과까지 합해 총 11범이었다.
하지만 전경환은 막대한 권력을 이용해 몇백억 원의 횡령을 저질렀고, 재판부에서 인정한 횡령액만 당시 76억 원이었음에도 7년 형을 선고받는데, 이 역시 3년 정도 살다가 석방됐다 지강헌이 분노한 건 당시 '리틀 전두환'으로 불렸던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에 대한 이중 판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후 지강헌은 탈출 과정에서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권총을 탈취하여 탈주 최후까지 잡히지 않던 5명 중 4명은 경찰의 검문을 피해 서울시에서 은신처 여러 군데를 전전하다 10월 15일 밤 9시 40분경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모 씨의 집에 잠입해서 고 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이 인질극은 당시 TV로 생중계되었다
탈주범들은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하듯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냈다. 특히 선글라스를 쓴 주범 지강헌은 밴드 비지스의 ‘홀리데이’ 카세트테이프를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지강헌은 “나는 시인. 미래를 보고 과거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겼다. 함께 인질극을 벌인 안광술 한의철은 자살
노래를 들으며 창문을 깨 유리조각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다. 자살 시도 직후 경찰특공대원들이 집으로 진입해 인질로 잡혀있던 가족들은 모두 무사히 구출되었다. 그리고 지강헌은 깨진 유리로 자신의 목을 찔렀는데 이를 지켜본 인질이 비명을 지르자 경찰특공대가 인질이 위험한 걸로 판단하여 즉각 무방비 상태의 지강헌에게 다리와 옆구리에 총을 발사하였으며 몇 시간 뒤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도 못받고 사망했다
응급실에서 지강헌을 맞은건 수십명의 기자들과 카메라였다. 카메라 조명으로 응급실은 방송국 세트장을 방불케 했다. 거기에 탈주범들의 대장 격인 지강헌(당시 34살)이 누워 있었다. 경찰이 쏜 총 한 발이 그의 왼쪽 무릎 바로 아래로 들어가 무릎 위로 관통하여 나왔다. 그리고 복부에도 총상이 있었다. 방향으로 보아 아마도 무릎을 관통하여 나온 같은 총알이 다시 복부에 들어가 박힌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두 발의 각기 다른 총상일 수도 있었다.
환자는 응급실에 도착 당시 출혈로 인한 쇼크 상태였다. 원래 복부 외상은 일반외과 진료 분야이고 흉부외과의 진료분야는 흉부 외상이지만, 워낙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응급환자가 총상으로 내원했기 때문에 여러 외과계열의 의사들이 모두 응급실에 호출됐다. 특히 흉부외과 의사들은 쇼크 처치에 능했지만 서로 미루고 이미 철수한 일반외과 의사들은 나타나지 않았기 않았고 얼마 뒤 흉부외과 교수도 퇴근하면서 응급실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 했다
탈주극을 벌인 12명 중 사망한 사람을 뺀 9명 중에 현재 수감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가장 마지막에 잡힌 김길호와 지강헌 인질극 중 유일한 생존자인 강영일이고 나머진 출소 후 재범으로 다시 교도소에 있다고 한다 출소한 후 강영일은 이후 인질극 피해자한테 공식으로 사과하려고 채널A 그때그사람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강영일은 선고 공판에서 검찰은 15년을 구형했지만, 인질들이 그를 위해 써준 탄원서 덕분에 7년 형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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