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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의 사건파일

⚫️미스 서울 납치사건 납치범 미스코리아 서울

by 와우의 레이스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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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와우의 레이스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이어진 곳에는 언제나 범죄가 존재했고
고대부터 21세기까지 어떤 국가나 사회든 예외는 없었습니다 범

죄 역시 시대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몰랐던 혹은 궁금했던 사건사고를 이면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사건 파일은 미인대회

입상자를 납치한 최초의 사건 미스서울 납치사건입니다

 

 

 

 

 

 

 

 

 

 

 

 

 

 

 

 

 

 

 

 

 

 

굵은 웨이브 머리, 화려한 드레스, 어깨띠, 왕관.

미스코리아 하면 생각나는 것들입니다

1957년 5월 19일, 서울시립극장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라는 이름으로 정식 대회가 열렸고

이 대회의 목적은 미스 유니버스대회의 한국 대표를 뽑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일보 주최로 열린 미스코리아 대회 당시 상품은 상금 삼십만 환,

양단 치마저고리 한감,  케미 A, 양복지, 목걸이 한 점,

치마저고리 한감, 은수저 한 벌이었습니다

제1회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이후 수많은 미스코리아가 탄생했고.

60년대, 70년대를 넘어가며 TV 등 미디어의 발달로

미스코리아 대회는 지상파 방송으로 생중계됐고.

80년대에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일명 ‘연예인 등용문’이 돼

고현정, 오현경, 염정아 등 미스코리아 출신 연예인이 배출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 사건 개요

 

 

 

 

1982년 9월 국내 언론에는 미스 서울(현 미스코리아 서울) 출신의

당시 27살의 이순복이 미국으로 납치됐다는 보도가 대대적으로 나왔습니다

보도에 따라 이에대한 치안본부는 수사를 진행해 이순복이 

집을 나간후 평소 동거해 오던 전과 6범의 한승희를 따라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해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음을 밝혀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미국경찰이 한 방을 갑작스럽게 들이닥쳤고

방 안에서 발견된 건 20대의 한국인 여성 이순복은 구출되었다

그녀의 온몸은 상처투성이인 데다 담뱃불에 덴 자국까지

그야말로 만신창이였습니다 그녀를 폭행한 건 함께

투숙했던 한국인 20대 남성 한승희였습니다.

안정을 되찾은 여성은 자신이 '미스코리아'라며 납치를 당해

 

 

미국으로 오게 됐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순복은 경찰 조사에서 한국에서부터 흉기로 협박을 받아

돈을 빼앗겼고 지난 5일 미국행 비행기에 나를 강제로 태웠다며

미국 호텔에 감금돼 담뱃불로 지지는 등 지속적으로

폭행 피해를 당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경찰은 이순복의 진술을 토대로 함께 호텔에

머물던 남성 한승희를 체포했습니다

하지만 한승희는 혐의를 강력 부인했고

그는 함께 미국 이민을 꿈꿨기에 미국에 입국한 것이며

미국에 온 후 이순복이 저에 대한 마음이 갑자기 바뀐 것뿐이라며

학대나 폭행을 가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완강히 부인했습니다

 

 

 

 

 

 

 
 

 

계속된 미국 수사당국 조사에서 한승희는 위조여권 사용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납치 등의 혐의는 강력 부인했습니다

미국 수사당국도 한국 수사기관의 조사 내용 등을

토대로 한 씨의 납치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결국 한승희는 위조여권 사용 혐의 인정 대가로

한국으로 추방돼 10월 7일 한국에

입국했고 한국경찰로 인도되었습니다

서울지검에 공문서 변조 및 동행사·여권법및

밀항단속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고

 

 

한편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순복은 미국 콜로라도 법원으로부터

한승희와 함께 추방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이순복은

귀국을 거부한채 미국 덴버시에 머무르면서 친구집을 오가며

미국에 이민신청을 내기도 했습니다

변호사 비용등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국내에서 가깝게 지냈던 외국인이 이양을 돕기 위해 알려졌는데

 

 

한국 정부에서는 한승희와 더불어  불법출국한 형사범이라는 이유로

미국정부에 대해 이순복을 출국시켜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이순복은 계속해서 한국행을 거부했는데

거부 이유는 한국으로 입국 시 한승희 측으로부터

보복을 당할 수 있다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법원은 같은 해 12월 이순복에

대해서도 추방명령을 내렸고 이순복도 결국

1983년 2월 강제 송환됐습니다

 

 

 

 

 

 

 

 

 

 

 

 

 

 

※ 납치에서 구출된 이순복 한승희가 구속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입국을 거부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한승희가 두려워서 일까?

일단 두사람의 과거를 자세히 살펴보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12월

우연한 택시 합승이 계기였습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외모에 이끌렸고

한승희는 이순복에게 자신을 미국 명문대를 다니다

결혼 상대를 위해 한국에 귀국했다고

소개하며 재미교포 사업가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미국 시애틀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고,

집도 갖고 있다는 말로 이순복의 마음을 얻었지만

. 한승희가 밝힌 신분은 모두 거짓이며 환심을 사기 위한 사기였습니다.

당시 한승희는 부모에게 용돈을 받으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던 상황이었고

그는 남다른 외모와 명문대 출신 재원이던

이순복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재미교포 사업가 행세를 한 것입니다

한승희는 거짓말은 과거 위조여권을 통해 수차례

미국에 다녀왔던 경험이 있어 미국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더 놀라운건 한승희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또래 여학생과의 사이에서

두 자녀를 낳았다가 방탕한 생활로 이혼을 당한 전력도 있었고

자신의 문란한 생활을 나무라는 부친을 폭행한 전력도 있었으며.

존속상해를 포함해 강도상해, 밀항 등 전과 6범의 범죄자였습니다
이 같은 전력을 알지 못했던 이순복은 한승희의 요구에 따라

1982년 7월부터 동거를 시작했는데 한승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 씨에게 결혼을 재촉했고 두 사람은 함께 이순복의 부모에게 인사를 드렸고 지난

한승희가 미심쩍었던 이순복의 부모는 한승희에 대해

뒷조사를 진행해 두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딸을 다시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순복이 돌아가자 한승희는 이후 본격적으로 미국 밀입국을

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위조여권으로 다시 미국에 입국해 여러 차례 이순복에게

“곧 미국에서 초청장이 갈 것이다”,

“빠르게 곧 미국으로 당신을 데리고

올 방법을 찾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고

 

이미 미국 밀입국에 사용할 여권을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지금과 같이 여권의 중요성이 크게 인식되지 않던 시기였기에

한승희는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에게 빌린 여권과,

돈을 주고 한 남성에게 구입한 여권을 브로커에게 맡겨

한승희와 자신의 사진을 넣어 변조했고 이후

이순복의 가족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해 이순복을 탈출시 켜고

서울에서 머물다 9월 초 위조여권을 이용해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행복할 거 같았던 미국생활하지만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나버리면서 둘 사이는 틀어졌고 이순북이  한국에 있던 내연남에게 전화를 하자

한승희가 폭력적으로 돌변하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고

한승희는 이순복이 호텔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했고,

이순복은 결국 9월 11일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구출을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구출된 이순복이 한국행을 선택하지 못한 이유는 두 사람은 모두 위조여권을 이용해

미국에 입국한 상태였기에 납치·폭행 혐의 수사와 별도로

두 사람의 위조여권 관련 수사도 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강제로 송환되어 버린 이순복 귀국 즉시 체포돼

위조공문서 행사,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되었습니다

1980년 초 보수적인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당시 여론은 해당 사건을 국제적 망신이라고 강한 비판을 받았고

여권을 위조하고 신분을 속였던 둘 다 사회적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재판에 회부된 이들은 법원에서 이순북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고

함께 기소된 한승희도 추가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도합 징역 6년을 복역했습니다

 

 

재판에서 이순복이 희대의 명언을 남겼는데  검찰이 자신에게

징역 5년을 구형하자 편지지 24장 분량의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고

이 씨는 “남보다 조금 더 예쁘다는 것이 이렇게 죄가 됩니까”라며

“여자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유린당하고 징역 5년이란 구형을 받아야 합니까”라고

​망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여조여권에 대한 심각성이 대두되기도 했습니다



이상으로 사건파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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