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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의 사건파일

⚫️이학만 살인사건 경찰관을 두명이나 살해하고 도주했던 범죄자 재판 사형수 근황

by 와우의 레이스 202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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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와우의 레이스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사건파일은 한국 살인사건 대한민국 현상금

지명수배자 액수 순위 네 손가락 안에 들었던 이학만 사건입니다 

 

 

 

 

 

2004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폭력 사건 피의자인 강간치상 등 전과 10범을 검거하려던 강력반 형사 2명이 피살됐다. 경찰관 심재호(33) 경사와 이재현(27) 순경은 불과 2∼3분 사이에 살인범 이학만(35·택시기사)이 휘두른 흉기 칼부림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피의자 이 씨는 24㎝ 길이의 흉기와 도주 차량을 사전에 준비했고, 공범 김 모(38)씨를 대동해 경찰 잠복 여부를 망보게 하는 등 치밀하게 대처했다. 하지만 경찰은 3단 경찰봉과 수갑·포승줄만 가졌을 뿐 총기를 휴대하지 않는 등 현장 대응이 안이했다는 안타까운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학만은 2004년 오후 2시쯤 강서구 방화3동 H연립 2층 할머니 박모(여·49)씨 집에 중간방 창문을 통해 침입한 뒤 거실로 나와 길이 30㎝(날 길이 16㎝)의 흉기로 박씨와 박 씨의 외손자 김 모(4)군을 위협했다. 이학만은 “내가 경찰을 죽인 살해범”이라고 밝혔고, 박 씨는 “흉기를 내려놓으라”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박 씨가 손에 약간의 상처를 입었다. 박 씨는 “내 아들 같다. 절대 신고하지 않겠다. 국수를 끓여주마”라며 안심시킨 뒤 몸에서 냄새가 나고 옷이 더러워진 이학만에게 함께 사는 사위 셔츠와 새 칫솔을 주고 점심상도 차려줬다. 이학만은 “나는 곧 죽을 테니 돈이 필요 없다”며 손자에게 1만 3000원을 건넸고, “경찰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유가족에게 미안하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약수터에서 씻고 길에 버려진 옷을 주워 입으며 생활했다”라고 주장했다.

 

이학만은 2004년 오후 2시쯤 강서구 방화3동 H연립 2층 할머니 박모(여·49)씨 집에 중간방 창문을 통해 침입한 뒤 거실로 나와 길이 30㎝(날 길이 16㎝)의 흉기로 박씨와 박 씨의 외손자 김 모(4)군을 위협했다. 이학만은 “내가 경찰을 죽인 살해범”이라고 밝혔고, 박 씨는 “흉기를 내려놓으라”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박 씨가 손에 약간의 상처를 입었다. 박 씨는 “내 아들 같다. 절대 신고하지 않겠다. 국수를 끓여주마”라며 안심시킨 뒤 몸에서 냄새가 나고 옷이 더러워진 이학만에게 함께 사는 사위 셔츠와 새 칫솔을 주고 점심상도 차려줬다. 이학만은 “나는 곧 죽을 테니 돈이 필요 없다”며 손자에게 1만 3000원을 건넸고, “경찰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유가족에게 미안하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약수터에서 씻고 길에 버려진 옷을 주워 입으며 생활했다”라고 주장했다.

서울 강서경찰서 공항지구대는 이날 오후 6시40분께 '경관 살해범이 침입했으며, 아기와 내 어머니가 함께 있다'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해 이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해 이 씨의 도주극은 사건 발생 8일 만에 막을 내렸다.

 
 
 
 

이학만 사건 요약해보면

2004년 8월 1일 이학만이 오후 9시 25분 마포구 노고산동 C커피숍에서 서부서 심재호 경사, 이재현 순경을 흉기로 살해 후 도주하였다.

오전 8시 55분 영등포구 신길6동 주택가에서 이학만의 택시가 발견되었다. 주변 공터에서 피 묻은 바지와 양말이 발견되었다. 공범 김 모 씨가 검거되었다. 이학만의 공개수배령이 전국에 내려졌다.

8월 3일 이학만의 현상금이 2000만 원으로 책정되었다. 수배 전단 5만 장이 배포되었다. 이학만의 주민등록번호로 가입된 인터넷 아이디가 성북구 돈암동 삼성아파트에서 접속되었다. 경찰은 특공대 기동대 강력반 파출소 등 소속 요원 3백여 명을 총기로 무장시킨 채 투입해 수색 작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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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 경찰이 100여 가구를 수색한 결과, 삼성아파트에서 접속된 인터넷 아이디는 초등학교 6년생이 수배 전단지에서 본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 것이 확인되었다

8월 6일 - 이학만의 현상금이 5000만 원으로 인상되었다.

8월 8일 - 이학만이 오후 6시 55분 강서구 방화3동 H빌라에서 할머니와 손자를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다 검거되었다. 자해를 시도하여, 이대 목동병원에 후송되었다.

 
 
 

심재호 경사 등이 이학만과 만나기로 한 노고산동 C카페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9시 직전이었다. 정 경장은 도주로 차단을 위해 바깥에서 대기했다. 약속시간보다 22분 늦게 온 이학만이 애인과 마주 앉은 오후 9시 25분쯤 심 경사는 경찰 신분증을 제시했다.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던 찰나 이학만은 돌연 흉기를 꺼내 심 경사의 심장과 옆구리를 찔렀고 쓰러지는 선배를 붙잡던 이재현 순경의 등을 연이어 찔러 순식간에 주위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이재현 순경은 그래도 피의자 이학만을 검거하고자 다리 한쪽을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커피숍 안 사람들에게 119를 불러달라고 외쳤다. 그리고 이학만의 다리라도 잡아 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아무도 선뜻 다가오려는 사람이 없었고 다가오면 죽여버리겠다고 악쓰고 위협하는 이학만은 이재현 순경을 무려 9군데나 칼로 찔러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어버리고 도주해 버렸다

 
 

이학만은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간 뒤 할머니 신 씨가 6시 37분 112에 신고, “경찰살해범이 있다고 하는데 조심스럽게 찾아가 보라”며 주소를 알려줬고, 경찰은 6시 42분 공항지구대 소속 경찰관 4명을 현장에 보냈다. 출동 경찰이 박 씨 집 초인종을 누르자 박 씨는 김 군을 업고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인터폰 화면으로 경찰을 확인한 이학만은 안방에 들어가 흉기로 배를 찌르며 자해를 시작했다. 그 사이 경찰은 중간방 창문으로 진입, 6시 55분 이학만을 붙잡아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에 옮겨졌다. 이때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들것에 실려 나오는 이학만의 사진이 다수 촬영되었다.

이학만은 “죽게 내버려 두지 왜 살려뒀냐”라고 경찰에게 말했고 2시간이 넘게 응급 수술을 받은 뒤 밤 11시 5분쯤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생명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라고 의료진이 전했다.

박 씨 집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서는 경찰은 “이학만이 1996년부터 1년 반 동안 검거 현장에서 300~400m 떨어진 한 옥탑방에 거주했다”며 “검거 현장 인근 공터에서 이학만이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흰색 크레도스 승용차가 연료가 다 떨어진 채 발견됐다”라고 밝혔다. 이 차량은 구로동에서 도난당한 차량이다. 경찰은 “차를 타고 숨어 지내다 연료가 떨어지자 차를 버리고 주택에 침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박 씨 집 중간방의 경우 창문에 창살이 없고 언덕길에 인접해 있어 외부에서 침입하기 쉬웠다”라고 설명했다.

 

 

 

 

 

"피고인은 우발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범행 수법이 매우 잔인할 뿐 아니라 정당한 이유 없이 공권력에 정면 도전한 만큼 극형이 불가피하다"라고 밝히며 이학만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005년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사전에 경찰관 살해를 계획한 것이 아니었고, 이 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하며 반성하고 있어 아직은 교화의 필요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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