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와우의 사건파일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사건 원인 인명피해 사망자수 피해규모 인명사고

by 와우의 레이스 2023. 12. 5.
반응형



 

 

 

 

 

 

 

 

 

 

 

 

 

 

 

 

 

 

안녕하세요 와우의 레이스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사건 파일은

대구 아침출근시간을 경악케 했던 가스폭발사고입니다 

 

 

 

 

 

 

 

 

 

※ 사건 개요

 

 

 

 

 

대구 내에서의 가장 큰 사고는  지하철 화재참사가 유명하지만

그 이전 덜 알려진 상인동 가스폭발사고

1995년 4월 28일 오전 7시 52분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 상인역 공사현장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느닷없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는데.

 

 

3㎞ 떨어진 지역에서도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현장에서는 50m가 넘는 불기둥이 치솟았고.

무게 280㎏에 이르는 복공판(지하철 공사장을 덮는 철제 판)

2,000여 개도 공중에 솟았다가 떨어졌습니다.

마침 지하철 건설을 위해 주변 땅이 온통 파헤쳐진 상황.

순식간에 건설현장 400m가 무너져 내리고 시민과

학생을 태운 출근길 버스가 30m 아래 땅속으로 곤두박질쳤고.

건물 80여 채가 깨지거나 갈라졌습니다.

 

이 사고로 101명의 사망자와 20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근처에서 등교길을

걷던 학생 42명을 포함해 총 사망자수

101명이 사망했습니다.

또 202명이 부상을 입었고,

건물 346채, 자동차 152대가 파손되어

피해액은 540억 원이 집계되었습니다

 

 

 

 

 

 

 

※ 평화로운 아침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이유는?

 

 

 

 

당시 신축공사장에서 지하 굴착을 위해 천공기로 75mm 구멍 31개를 굴착했고.

이 과정에서 천공기가 도시가스 배관을 관통시켜 구멍이 뚫렸습니다.

이로 인해 가스가 누출됐고, 인근 하수구를 통해 가스가 지하철 공사장으로 유입됐고.

유입된 가스는 원인 모를 불씨에 의해 큰 폭발을 일으켰고.

폭발음과 함께 50m의 불기둥이 치솟았습니다 늑장 신고와 안전불감증.

가스 누출 사실을 감지했으면서도 30분이 지나서야 신고했고

가스회사도 신고를 받은 직후 가스관 밸브를 잠그지 않고

사고 발생 30분이 지나서야 차단, 사고를 더욱 키웠습니다.

 

 

 

당시 백화점 상인점 지하철공사장에 인접한 백화점 신축 공사 현장에서

도시가스 배관을 사전에 확인하지 않고 무단 굴착하는

과정에서 중장비가 가스관을 파손해 발생했고. 신축 공사를

맡은 표준개발 측의 뒤늦은 신고가 사고를 키웠는데.

그 당시에만 해도 도시가스 배관이 묻혀있는 구간에서 굴착 공사를

하는 경우 도시가스사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를 규제하는 법적 조치도 미흡했습니다.

 

 

 

대형공사장에서 지하 굴착을 할 경우에는 해당 관청의 도로굴착 승인을 받은 후

가스관이 묻힌치를 문의한 후 공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당시 공사 관계자들은 절차를 무시하고 굴착을 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 사고로 지하 매설물에 대한 전산대장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당국의 안전관리 행정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었으며,

긴급 구난체계 및 통합 구조체계의 정비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대책기구가 설립되고,

도시가스사업법 등 관계 법령의 개정을 가져왔습니다.

 

 

 

 

 

 

 

 

※ 인명피해가 컸던 이유

 

 

 

가스관이 파손된 곳은 이동이 많은 8차선 대구 상인네거리 인근,

가스 누출이 일어난 시각은 등교와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오전 시간이었고.

특히 상인네거리 바로 옆에 위치한 영남중학교는 등교 시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가스가 누출되고 있었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거리에는

차량과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버스에 오른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로

향하고 있던 그때, '쾅'하는 귀를 찢을 듯한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올랐습니다

당시 상인네거리는 지하철 공사로 도로에 사람과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복공판이 깔린 상태

 

 

복공판 위에 있던 차, 사람들은 15m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그야말로 폭발의 여파는 엄청났고 대구 전체는 카오스 상태에 빠지고 말았는데.

문제는 그렇게 큰 사고가 났는데도 중계방송이 없었다는 것.

뉴스는커녕 고교야구 중계방송이 나왔습니다

 

 

특히 사고로 인해 학생 사상자가 많이 나와 유품으로 책가방,

불에 탄 교과서 등이 나와 현장의 참혹함을 더했다. 강력한 폭발과 고열을 동반한

사고로 현장은 전쟁터만큼이나 참혹했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복공판에 눌려 출근길 시민의 몸이 잘리고 고열로 훼손된 시신도 많았으며

사망 101명에 부상 202명. 아파트 유리가 깨져 입은 부상은 경상 축에도 못 꼈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10대 중학생들의 떼죽음.

사망자 가운데 42명이 근처 남자 중학교 학생이었습니다

 

 

 
 

 

사고이후 이 사고는 관계 기관의 안일한 태도로 인해 벌어진 인재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이후 관련법 개정과 구난체계 개혁, GIS 구축 등이 이루어졌고.

법원에서는 시공사 측의 과실을 인정하여 인부를 포함한 회사 관계자 9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또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임종순도 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사퇴하였습니다.

 

 

 

당시 사고로 대구 영남중학교에서는 교사 1명과 남학생 42명이

목숨을 잃었고 아들을 잃은 부모들 중 12쌍의 부부가

먼저 떠난 자식의 동생을 낳았다. 놀랍게도 태어난 12명의

아이들 중 11명이 남자아이였으며 아이들과 부모들은 매년

만나 우애를 키워가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 중에는 영남중학교에 다니던 

쌍둥이 아들 김준희, 김준형 군이 둘 모두 등교하던 중에 사고로

사망해서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김상돈 씨 부부의 늦둥이

아들과 당시 대구대 강사였던 유족회장 정덕규 씨의 늦둥이 아들도 있고.

또 꼬꼬무에서는 해당 사고로 사망한 지한 군과 창윤 군의 사연도 추가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영남중학교는 1997년에 추모 공간인 세심관을 건립하여

희생자들의 영정을 모시고 사고 자료를 전시하면서

추모 행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 영정사진 훼손 등이

심해지자 2015년 20주기 추모식 이후 추모 공간을 교육용

시청각실로 리모델링하고 영정을 모시는 공간은 철거하는

한편 희생자들의 얼굴을 동판으로 제작하여

건물 중앙에 모시기로 유족들과 협의했고.

리모델링은 2015년 7월부터 이루어졌다

 

 

 

 

 

 

 

 


이상으로 사건파일 마치겠습니다

 

 

 

 

 

 

 

 

댓글